서울지부 서울지부 26.06.28 수련후기 -서울지부장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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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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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본 서울경기지부 6월 넷째주 수련 후기 - 에라 모르겠다〉
오늘 수련장에 《소리치유혁명 율본》 책을 일곱 번 읽고 온 분이 나타났습니다. 일곱 번이요. 저도 제 책을 일곱 번 읽어본 적이 없는데.
오늘 처음 오신 세 분도 《소리치유혁명 율본》을 읽고 오셨습니다. 징소리가 울리자마자 몸이 난리 부르스입니다. 책으로 예습을 단단히 하고 오셨나 봅니다.
쉬는 시간에 첫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몸은 즉각 반응하는데 머리가 자꾸 제동을 걸었다고 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게 맞나' 하는 통제심이 올라왔다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딱 한 마디를 내뱉었답니다.
"에라 모르겠다."
그 순간 몸이 폭발했습니다. 원장님도 기꺼이 자신을 던지려는 마음이 몸을 자극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움직임을 강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첫 참가자들 점수를 매긴다면 A++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수련장에는 간식도 풍성했습니다. 동해기정떡, 단팥빵, 꿀떡, 절편, 케이크, 치즈케이크, 호두과자, 방울토마토, 농사지은 작은 복숭아까지. 몸도 마음도 배부른 하루였습니다.
사실 저도 이 "에라 모르겠다"의 경험이 있습니다. 평생 내 사전에 '복종'이란 단어는 금기어였습니다. 누가 복종하라고 하면 일단 뒷목부터 잡았을 겁니다. 스스로를 '성실한 독종'이라 부르며 내 의지와 악으로 삶을 개척해온 사람에게, 복종은 패배자의 변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부터인가 만해 한용운의 시 〈복종〉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좀 무서웠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몇 년 전 위빠사나 명상을 할 때, 고엔까 선생의 법문에서 '서렌더(Surrender)'라는 단어가 귀가 아니라 가슴을 퍽 하고 파고들었습니다. 내맡김이었습니다. 내 얄팍한 계획을 내려놓고 우주에 주도권을 넘기는 것.
어릴 적 교회 오빠 시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할 땐 솔직히 무책임한 의존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그건 삶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이끌어갈 것이라는 어마어마한 배짱이자 믿음이라는 걸.
한번 솔직해져 보겠습니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된 게 몇 개나 될까요? 오히려 내 고집대로 하려다 일을 그르친 적이 훨씬 많지 않습니까.
내맡김은 '될 대로 돼라'는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대한 집착만 내려놓는 것입니다. 씨앗을 정성껏 심고 물을 주되, 언제 어떻게 꽃이 필지는 자연에 맡기는 것. 노력은 하되 통제는 놓는 것. 이것이 진짜 내맡김입니다.
시련이 오면 '에헤라디야, 이게 또 나를 어떻게 키우려나' 하고 주도권을 내어주는 겁니다. 내가 쥐고 있던 낡은 패턴을 놓아버릴 때, 비로소 무의식의 보물상자가 열리고 우주의 든든한 안내가 시작됩니다.
자아의 목표를 버리고 내면의 목소리에 복종할 때, 역설적으로 진짜 자유가 시작됩니다.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우주가 열 걸음 다가온다는 걸, 이제는 믿습니다.
율본 수련은 바로 이 내맡김이 일어날 때 몸과 마음의 치유가 즉각적으로 옵니다. 오늘 세 분이 그걸 온몸으로 증명해주셨습니다. 혹시 아직 망설이고 계신 분이 있다면, 딱 한 번만 외쳐보세요.
"에라 모르겠다."
그 한 마디가 시작입니다.
오후 수련이 끝나고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의 얼굴을 봤습니다. 언제 처음 왔냐는 듯, 오래전부터 함께한 단골 얼굴이었습니다. 율본이 처음을 없애는 데는 하루면 충분합니다.
수련 후에 원장님, 승현님, 연우님과 혜화칼국수에 앉았습니다. 수련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원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율본 홍보를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책과 율본을 더 많은 사람에게 닿게 하고 싶다고.
오늘 원장님이 치신 징소리는 파워풀하고 영롱했습니다. 이제껏 들은 징소리 중에 가장 훌륭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달이 떴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 달보다 오늘 하루가 더 아름다웠습니다.




